
우리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만지면 보드랍고 말랑말랑해서 틈나는대로 만지고 싶은 고양이. 밝은 황토빛 털은 등 전체를 덮었고 턱에서 배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주 보드라운 하얀색 털로 이루어져 있다. 사뿐히 내딛는 발에는 발등을 덮을 정도의 하얀 털이 나 있어 꼭 양말을 신은 것처럼 보인다. 이름은 랑, 외자다.
랑이의 첫 이름은 노랑이었다. 랑이와 함께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을 임시보호 하던 분이 구분하기 위해 목에 색줄을 묶어뒀는데, 랑이 목에는 노랑색 털실을 묶어두었다. 랑이를 만나러 가기 전 몇 개의 이름을 생각해보았지만 도통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노을, 보리, 룽지...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랑이를 만난 뒤에 이름을 지어야지 생각했다. 노랑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랑이가 떠올랐다. 사랑, 호랑이, 너랑나랑. 랑은 조사로 쓰일 때 with의 의미를 뜻하기도 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올해 8월은 랑이가 태어난지 1년째 되는 해다. 작년에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1살이 되면 꼭 생일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 가족끼리 보내는 작은 의례랄까. 그래서 오늘, 8월 15일에 랑이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꼬깔모자를 씌워줄 의지까지는 내지 못했지만, 랑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습식캔에 연어 트릿을 두른 뒤 조공 게살 츄르를 뿌려줬다. 역시 잘 먹었다. 양이 좀 많았는지 두 번에 걸쳐 먹었다.
랑이를 만나기 전에는 털 많은 동물과 함께 사는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반려 생명체로 선택할 거란 생각도 해본 적 없다. 물론 랑이와 함께 살기 몇 년 전부터 길냥이들에게 아주 가끔 밥을 주기도 했지만, 내 곁에서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몇 가지 계기로 마음이 서서히 움직였던 것 같다. 결혼 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 갑자기 나타난 실버벨, 남편의 연구소 마당에서 발견된 새끼 고양이, 그리고... 한여름에 바짝 말라 죽어가던 고양이까지. 특히 철로 된 구조물 위에서 죽어가던 고양이에게 물을 적셔주던 일은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고양이의 죽음을 목격한 뒤 나도 잠깐 쓰러졌다. 한여름 정오에 오랫동안 서 있기도 했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애가 타 기운이 빠져버렸던 것 같다.
어쩌다 고양이와 함께 살겠다고 결정했는지, 정확한 계기는 모르겠다. 그냥,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작은 생명은 할 수 있는 만큼 돌봐야겠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내 곁에는 잘 먹고 잘 자고 독립적이고 예민한 고양이가 두리번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랑이가 집에 오기 전부터 고양이 관련한 내용을 열심히 찾아봐서 그런가, 웬만한 일에는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고양이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랑이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내가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랑이의 몇몇 행동으로 어렴풋하게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나도 랑이 마음에 그럭저럭 든 것 같기는 하다. 거의 대체로 내곁에 머물기 때문이다. 내가 퇴근할 때면 슬쩍 현관 앞에 나와 있기도 하고. 이만하면 그럭저럭 마음에 든 거 아닐까?
나와 함께 사는 동안 랑이가 만족스럽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여전히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랑이를 통해 다른 생명체를 돌본다는 것의 무게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