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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사는 집

랑이의 배변 실수

요며칠 랑이의 배변 실수가 있었다. 

 

랑이는 아기 때부터 단 한 번의 배변 실수가 없었다. 380그램으로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도 종이 박스로 마련해준 간이 화장실에서 작은 발로 모래를 탁탁 덮고 나오곤 했다. 그랬던 랑이가 이번 주에 3번이나 배변 실수를 했다. 깔끔하고 예민한 랑이의 모습만 봐왔던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즉각 배변 실수의 원인을 찾아보았다. 온라인 카페와 이런 저런 기사를 정리해보니 1) 화장실이 작거나 모래가 마음에 들지 않을때 2) 분리불안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분출하는 경우 3) 변비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은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씩 제시해보기로 했다. 우선 화장실과 모래를 바꿨다. 출근 준비를 하며 랑이 모습을 틈틈이 관찰했다. 새 화장실이 마음에 들었는지 금세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 살짝 안도했다. 제발 화장실과 모래 문제였길 바라며 출근을 했다. 그리고 퇴근을 해보니, 지난 번 보다 양은 적었지만 역시 배변 실수가 있었다. 

 

무엇이 원인일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문득 내 발밑에서 뒹굴거리는 랑이가 보였다. 랑이는 내가 집에 있을 때면 거의 곁에서 머무는 편이다. 주변을 서성인달까. 내가 거실로 나가면 거실로 따라오고 침실로 들어가면 침실로 따라온다. 대체로 늘 곁에서 뒹굴거리거나 가만히 누워있는다. 혹시... 분리불안 증세는 아닐까? 

 

그 무엇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랑이는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 나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변 실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내용들도 오랜 시간 여러 임상을 통해 추측한 것일 뿐이다. 화장실이나 변비 문제라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간에 해결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비는 랑이도 괴로울 듯) 그러나 분리불안 때문이라면 이 문제는 어쩌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7일의 휴가 기간 동안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만 있었다. 딱 세 번 나갔는데, 두 번은 마트, 한 번은 정형외과였다. 모든 외출은 1시간 반 이내로 마쳤기 때문에, 외출 기분 나지 않는 외출을 했달까. 일주일 내내 랑이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번 주부터 시작된  나의 출근은 랑이에게 급격한 환경 변화로 느껴졌겠구나 싶기도 하다. 이 역시 내 추측일 뿐이다. 

 

만약 언어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면 나는 가장 먼저 랑이에게 언제 가장 아팠고, 어느 때 가장 서운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하루 종일 혼자 텅빈 집에 두어서 너무 미안하다고도 말하고 싶다. 나는 랑이 덕분에 마음의 자리가 따뜻해졌는데, 랑이는 나와 만나서 어떤 점이 좋았는지도 물어보고 싶고. (언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은 없겠지....만서도...)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 심리 상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고양이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끙끙거리는 사람에게 맞춰주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랑이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조금 쓸쓸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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