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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45 나의 계급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발된 구역과 개발되지 않은 구역을 가르는 '길'이었고,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이었으며, 학급에서 아이들이 이루고 있는 '그룹'이었다. 54 언제나 혼자인 것과 항상 함께인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견딜 만할까? 스무 살의 내 소원이 서울에 가는 일이었다면 스물 여섯 살의 내가 바라는 것은 '자기만의 방'이었다. 자기만의 방은 독립과 해방의 공간이기 이전에 나의 눈물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을 권리였다. 57 명문 빌라를 떠나 노후한 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시절, 중학생이던 나는 생각했따. 우리는 가난한가? 더 이상 아파트에 살 수 없어 낡은 상가주택과 다가구주택으로 이사를 다니던 시절, 고등학생이던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가난한가? 용달차에.. 더보기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 임소라, , 하우위아 책모임 첫 번째 책. 그런데... 19가지 이야기 중에서 내가 겪은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도.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나도 다른 여성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 명의 여성인데,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 나의 이야기는 이와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중요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있기나 할까? 여성 이야기는 너무나 중요하고 긴급해서 내가 겪은 부조리함 같은 건 아무리 어딘가에 적어도 빨간 줄로 좍좍 그어질 것만 같다. '이건 중요한 이야기 아님'. 이런 식으로. 겪지 않은 일에 대해 마음이 동한다 할지라도 쉽게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이와 같다. 더보기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 문학동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연령대 작가의 책을 읽으면 공감으로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다고 느껴진다. 시대의 중요 사안이나 역사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공통 감각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세대로 나누는 관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간의 한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세대 별로 겪는 공통된 흐름이 있기는 있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언제가 엄마가 들려준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심시선 여사와 고조 할아버지는 이미 성별만으로 역사로부터 평가 받는 기준이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계보'라는 측면에서 생각을 해봤다. 고조 할아버지는 재산을 털어 절을 지은 뒤 직접 주지스님으로 계셨다고 한다. 그곳이 어디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화순.. 더보기
시와 산책 한정원, , 시간의 흐름 30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34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피동적으로 얻어지고 잃는 게 행불행이라고 규정하고 말면, 영영 그 얾매임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68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세사르 바예호, 「여름」, 「「오.. 더보기
9월 셋째 주 #마감 기간 이번 주는 마감 기간이었다. 분명 작년에 비하면 몹시 느슨한 일정인 것 같은데 생각만큼 느슨하진 않다. 마감은 어떤 형태이든 힘든 것 같다. 너무 빠른 마감이 다가오는 월간지와 두 달에 한 번 3주 정도를 마감모드로 지내야하는 이 일. 나는 어떤 속도가 맞는 걸까? 분명한 건 다시는 월간지를 만드는 속도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궁금한 말 나는 늘....질문이 많았다고 한다. 엄마의 증언이긴 한데, 맞는 것 같긴 하다. 친구 L이 내 이름을 호기심천국으로 저장해둔 걸 보면. 그런데 요즘은 내가 무얼 궁금해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도 많지 않다. 듣고 싶은 말 역시...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심심한 시기를 보내고.. 더보기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 문학동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꼽는다면 언제나 백석 시인을 으뜸으로 내세운다. 사실 백석 시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한국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실토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윤동주 시인을 꼽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시를 잘 모르지. 모르지만, 나는 윤동주, 김소연, 심보선, 허수경, 진은영 시인을 좋아하고 백석 시인을 가장 좋아한다. 백석 시인을 좋아하는 일에 왜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아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내게 독보적인 시인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백석 시인을 좋아하는 이라면 당장 펼쳐들고 읽겠다는 의지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김연수 작가는 내 20대 시절의 최애 작가였다. 김연수.. 더보기
오디오북_일의 기쁨과 슬픔 사흘간 출퇴근하며 짬짬이 들었다. 여성의 삶이란, 직장인의 삶이란, 일이란, 나란 무엇인가. 스스로 아무것도 못한 채 나이만 들어버렸다고 생각한 적 있었다. 요즘은 그래도 덜하지만, 올해 초까지 이 생각이 자주 들어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사실 의미없는 고민일 뿐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냥 하면 된다. 할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봐 걱정하는 일도 정말이지 쓸모없는 시간 낭비다. 그냥 계속 하고, 또 하고, 틈나는대로 좋아하는 사람과 힘껏 웃고 건강 관리 잘 하며 일상을 꾸리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렇지만 이상과 바람은 그것 그대로 의미있으니 애써 삭제하지 말자. 더보기
랑이의 배변 실수 요며칠 랑이의 배변 실수가 있었다. 랑이는 아기 때부터 단 한 번의 배변 실수가 없었다. 380그램으로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도 종이 박스로 마련해준 간이 화장실에서 작은 발로 모래를 탁탁 덮고 나오곤 했다. 그랬던 랑이가 이번 주에 3번이나 배변 실수를 했다. 깔끔하고 예민한 랑이의 모습만 봐왔던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즉각 배변 실수의 원인을 찾아보았다. 온라인 카페와 이런 저런 기사를 정리해보니 1) 화장실이 작거나 모래가 마음에 들지 않을때 2) 분리불안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분출하는 경우 3) 변비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은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씩 제시해보기로 했다. 우선 화장실과 모래를 바꿨다. 출근 준비를 하며 랑이 모습을 틈틈이 관찰했다. 새 화장실이 마.. 더보기